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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조세걸(曺世杰) -

- 생몰년 : 1635~?
- 국    가 : 한국


曺世杰 1635(인조 13)~?

조선(朝鮮, 1392~1910)의 화가.

‘世杰’은 ‘世傑’이라고도 쓰며, 호(號)는 패주(浿洲)⋅패천(浿川)⋅수천(須川)⋅청계(淸溪), 본관(本貫)은 창녕(昌寧).

평양(平壤)에서 태어났다.

조선 후기의 광태사학파(狂態邪學派)의 화풍(畫風)을 구사(驅使)하였던 김명국(72)에게 그림을 배웠으며, 벼슬은 첨절제사(僉節制使)를 지냈다.

집안이 부유하여 중국의 널리 알려진 글씨와 그림을 많이 가지고 있었으며, 정교하고 섬세한 필치로 산수(山水)⋅인물 등에 뛰어났다.

장지연(張志淵, 1864~1920, 조선의 언론인이며 우국 지사)의 [진휘속고(震彙續攷)]에 따르면 ‘집안이 부유하고 서화(書畫)를 좋아하여 중국의 서화 작품을 많이 수집하여 집안 가득하였다.’고 하며, 김창흡(金昌翕, 1653~1722, 조선의 유학자)의 시문집(詩文集) [삼연집(三淵集)](모두 36권 18책)에 따르면 중국 화풍을 공부하였다고 한다.

정내교(鄭來僑, 1681~1757, 조선의 시인이며 문장가)의 [완암집(浣巖集)](모두 2권 4책)에 따르면 ‘김명국의 화법(畫法)을 전수받아 산수 인물화를 그렸으나 신수(神髓)에는 이르지 못하였다.’고 한다.

단채(丹彩)를 잘 써서 일반 화가들의 수묵도말(水墨塗抹)과는 다른 특색을 보여 주었으며, 김명국의 화법을 후세에 전하였다.

화풍은 두 가지 경향을 보이는데, 하나는 정교한 필치와 선명한 색채를 사용하여 중국 명(明)나라(1368~1644) 말 청(淸)나라(1616~1912) 초의 화풍을 반영한 것이고, 다른 하나는 김명국으로부터 배운 절파(浙派, 중국 명나라 말기 때 발생한 회화의 한 파) 화풍의 영향이 반영된 것이다.

1682년 김수증(金壽增, 1624~1701, 조선의 문신이며 성리학자)의 부탁을 받아 지금의 강원도 화천군(華川郡) 사내면(史內面)에 있는 곡운구곡(谷雲九曲)을 돌아보고 그린 [곡운구곡도(谷雲九曲圖)](64×42.5cm, 서울 국립 중앙 박물관)는 세밀한 자연 묘사와 함께 가라앉은 색채를 사용하여 중국적인 화풍을 보여 준다. 이 작품은 제1곡 방화계(傍花溪)부터 제9곡 첩석대(疊石臺)까지 그린 것으로, 우리 나라에 전하여 오는 구곡도(九曲圖) 가운데 제작 동기와 유래를 가장 상세하게 전하는 것이다.

1695년에는 숙종(肅宗, 1661~1720, 조선의 제19대 왕. 재위 1675~1720)의 어진(御眞)을 도사(圖寫)하는 데 참여하였다.

[계산풍우도(溪山風雨圖)](1705년, 서울 국립 중앙 박물관)는 화면의 왼쪽 윗부분에 ‘을유계춘패주칠십사(乙酉季春浿州七十寫)’라는 관기(款記)가 있어 일흔 살에 그렸음을 알 수 있다. 전체적인 구도는 산만하면서 절파 화풍과는 전혀 다르지만 산의 세부 표현에서 절파 화풍의 영향이 보인다.

이 밖의 작품으로 [선인위기도(仙人圍棋圖)](서울 덕수궁 미술관)가 있으며, 그 밖에 전칭(傳稱) 작품이 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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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작 : 동방미디어